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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다쓰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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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라 다쓰노리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로 활동하며 신인왕, MVP 등을 수상했고, 2002년부터 2003년, 2006년부터 2015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을 역임하며 센트럴 리그 우승 7회, 일본 시리즈 우승 3회를 달성했다. 2009년에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선수 시절에는 장타력을 갖춘 우타자로, 감독으로서 팀의 승리를 위해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3년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서 1220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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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다쓰노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5년의 하라
2015년의 하라
이름하라 다쓰노리 (原 辰徳)
출생일1958년 7월 22일
출생지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포지션내야수 / 감독
투타우투우타
선수 경력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1981–1995)
데뷔1981년 4월 4일
마지막 경기1995년 10월 8일
코치 경력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2001)
감독 경력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2002–2003)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5)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9–2023)
일본 국가대표팀 (2009)
타격 성적
타율0.279
안타1675
홈런382
타점1093
수상
신인왕센트럴 리그 신인왕 (1981년)
MVP센트럴 리그 MVP (1983년)
일본 시리즈 우승선수: 1981, 1989, 1994
감독: 2002, 2009, 2012
명예의 전당
헌액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2018년)
헌액 부문전문가 부문
득표율78.7% (122표 중 96표)
기타 정보
신장181cm
체중84kg
학력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
도카이 대학

2. 선수 경력

原 辰徳|하라 다쓰노리일본어는 1980년 도카이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 야구 드래프트 1순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1995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 요미우리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현역 시절에는 '와카다이쇼'(若大将일본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209]

1981년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개막전에 6번·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프로 첫 안타와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2루수로 출전했지만, 나카하타 기요시의 부상으로 3루를 맡게 되었고, 그 해 22개의 홈런과 67타점을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1982년에는 홈런을 33개로 늘려 최다 승리 타점을 기록했다. 1983년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 타점왕과 최다 승리 타점을 차지하며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센트럴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1986년 9월 2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왼쪽 손목 유구골 골절상을 입어 남은 경기에 결장했다. 이후 아킬레스건 통증까지 겹쳐 부상 슬럼프에 시달렸다. 1987년과 1988년에는 2년 연속 3할 타율과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1989년에는 좌익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 9년 연속 20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긴테쓰와의 일본 시리즈 5차전에서 만루 홈런을 쳐냈다. 1990년, 옆구리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시즌 타율 3할을 기록했다.

1991년에는 11년 연속 20홈런이라는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을 달성했고, 연간 희생 플라이 리그 신기록(12개)을 세우며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1992년,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12년 연속 20홈런의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을 이어갔다.

1993년에는 다시 3루수로 복귀했지만,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 1994년, 왼쪽 다리 아킬레스건 부분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했지만, 14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같은 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5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에서 그는 통산 382호 홈런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라 다쓰노리의 선수 시절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선수 시대별 성적
구단연도GBBBNRUNHit2BH3BHHRTBRBISBSBHSbpSFWALIBBDBSODPBAOBPSLGOPS
도쿄 자이언츠198112550747064126236222276766072703789.268.308.483.791
1982130542494811361913325692116044242826.275.332.518.850
19831305715009415132432287103940860135611.302.375.574.949
198413054346872130191272328173146733588.278.369.496.865
1985124521441791252323425494732860210426.283.376.576.952
198611346740670115213362508072165242578.283.363.616.978
1987123489433801331733425895720744656111.307.372.596.968
1988126529467791402413125981560061616314.300.382.555.936
198911445939560103220252007433026042686.261.359.506.866
199010342536658111171201906864045233644.303.391.519.910
19911275244556612213129224865301255128271.268.342.492.834
1992117493437611191712822277430346177113.272.349.508.857
1993983873362877140111244432034414629.229.323.369.692
199467227200265841141063602212212215.290.364.530.894
1995701601441329806551521111311295.201.270.382.652
통산1697684460129311675273253823144109382507707053850894122.279.355.523.878



출처: 일본 프로 야구

2. 1. 프로 입단 전

하라 다쓰노리는 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와 도카이 대학을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1학년부터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고시엔에 4번 출전했다. 1974년 여름 선수권 대회에서는 준준결승에서 가고시마 실업고등학교의 사다오카 쇼지에게 막혀 연장 15회 패퇴했다.[15] 1975년 봄 선발 대회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스기무라 시게루가 있던 고치고에 연장 13회 접전 끝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16] 같은 해 여름 선수권 대회 준준결승에서는 사이타마 현립 아게오 고등학교에 패했다. 1976년 여름 선수권 대회는 2회전에서 도치기 현립 오야마 고등학교에 패했다. 고교 통산 43홈런을 기록했다.

1976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명될 가능성이 있었고, 한때 프로 입단 의향도 있었지만, 회의 4일 전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원했으나, 구단 방침에 따라 "자이언츠에 들어갈 수 없다면 진학한다"는 입장을 밝혔다.[17] 이후 자이언츠는 드래프트 외 입단으로 하라를 영입하려 했지만[18], 최종적으로 단념했다.

도카이 대학 진학 후 수도 대학 야구 리그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1학년 가을 리그전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고,[19] 이후 3번의 최고 수훈 선수, 7번의 베스트 나인(1학년 가을 리그 제외), 2번의 타격 3관왕(2학년 가을·4학년 봄)을 차지했다. 리그 통산 기록은 93경기 출장, 362타수 144안타, 타율 .398, 21홈런, 105타점이다. 1977년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와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에서는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1977년, 1979년, 1980년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3학년 때 일본에서 개최된 미일 야구에서는 와세다 대학오카다 아키노부와 함께 3, 4번 타자를 맡아 활약했다. 대학 4학년 때에는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에서 1경기 3홈런을 기록하는 등 "나가시마 시게오의 재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 아마추어 야구 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학생 선수로 유일하게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3위를 기록했다.

198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히로시마, 다이요, 닛폰햄 4개 구단의 경합 끝에 요미우리의 신임 감독 후지타 모토시가 1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요미우리에 입단했다.[20]

2. 1. 1. 유소년기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쓰이 화학 오무타 사택에서 살았다. 같은 사택에는 마유미 아키노부도 거주하였다.[210] 오무타 시립 히라바루 초등학교, 오무타 시립 미이케 초등학교, 오무타 시립 시라카와 초등학교 등으로 전학을 다녔다(사립 히라바루 유치원 졸업).[211]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하라 미쓰구가 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가나가와현 아쓰기시로 이사하였다.[212] 아쓰기 시립 미도리가오카 초등학교, 아쓰기 시립 난모리 중학교, 사가미하라 시립 가미쓰루마 중학교 등으로 전학했다.[213] 중학교 시절에는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의 공영 단지에 살았는데, 같은 동네에 추리소설가 모리무라 세이이치 일가도 살고 있었다.

2. 1. 2. 고교 시절

1974년 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하계 일본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고시엔 대회)에 3년 연속 출전했고, 이듬해 1975년 춘계 고시엔 대회(제47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고치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214] 고교 통산 43홈런을 기록했다.

1976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 직전 프로 팀 입단을 거부하고 도카이 대학 진학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전체 구단으로부터 '지명 없음'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드래프트 직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 쇼리키 도루와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하라 영입 의사를 밝혔고, 이를 들은 마쓰마에 시게요시 도카이 대학 총장이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하라는 프로에 보내지 않는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 1. 3. 대학 시절

原 辰徳|하라 다쓰노리일본어도카이 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204] 수도 대학 리그에서 세 차례 최고 수훈 선수, 7차례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2학년 가을과 4학년 봄에 타격 3관왕을 차지했으며, 리그 통산 93경기에 출전하여 362타수 144안타, 타율 .398, 21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다.

1980년 아마추어 야구 세계 선수권 대회에 일본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3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히로시마, 다이요, 닛폰햄의 4개 구단이 경합한 끝에 요미우리의 신임 감독 후지타 모토시가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요미우리에 입단하게 되었다.[20]

2. 2. 프로 야구 선수 시절

하라 다쓰노리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서 태어났다. 1981년부터 1995년까지 프로 야구 선수로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다. 1981년에는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1983년에는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자이언츠의 매우 인기 있는 선수였으며, 선수 시절 동안 신문, 잡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루어졌다.[1]

하라 다쓰노리의 선수 시절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선수 시대별 성적
구단연도GBBBNRUNHit2BH3BHHRTBRBISBSBHSbpSFWALIBBDBSODPBAOBPSLGOPS
도쿄 자이언츠198112550747064126236222276766072703789.268.308.483.791
1982130542494811361913325692116044242826.275.332.518.850
19831305715009415132432287103940860135611.302.375.574.949
198413054346872130191272328173146733588.278.369.496.865
1985124521441791252323425494732860210426.283.376.576.952
198611346740670115213362508072165242578.283.363.616.978
1987123489433801331733425895720744656111.307.372.596.968
1988126529467791402413125981560061616314.300.382.555.936
198911445939560103220252007433026042686.261.359.506.866
199010342536658111171201906864045233644.303.391.519.910
19911275244556612213129224865301255128271.268.342.492.834
1992117493437611191712822277430346177113.272.349.508.857
1993983873362877140111244432034414629.229.323.369.692
199467227200265841141063602212212215.290.364.530.894
1995701601441329806551521111311295.201.270.382.652
통산1697684460129311675273253823144109382507707053850894122.279.355.523.878



출처: 일본 프로 야구

2. 2. 1. 1980년대

1981년 주니치와의 개막전에 6번·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미사와 준에게는 2루수 플라이로 아웃되었지만, 우시지마 가즈히코에게서는 첫 안타를 기록했다. 다음날 경기에서는 고마쓰 다쓰오에게서 프로 첫 홈런을 뽑아냈다. 17일 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와의 경기(기타큐슈 시민 구장)에서는 엔도 가즈히코를 상대로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 흥분한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즌 초반에는 2루수로 출전했지만, 나카하타 기요시의 부상으로 3루를 맡게 되었고, 2루에는 시노즈카 도시오가 들어오면서 내야진이 갖춰졌다. 그 해 22개의 홈런과 67타점을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1982년에는 홈런을 33개로 늘려 최다 승리 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은 2개 차, 타점은 3타점 차로 가케후 마사유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83년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 타점왕과 최다 승리 타점을 차지하며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센트럴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3할 타율, 30홈런, 100타점 달성은 아오타 노보루,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에 이은 구단 역사상 네 번째 기록이었다.

1986년 9월 2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 쓰다 쓰네미의 직구에 파울을 치다가 왼쪽 손목 유구골 골절상을 입어 남은 경기에 결장했다. 이 부상은 하라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아킬레스건 통증까지 겹쳐 부상 슬럼프에 시달렸다. 1987년과 1988년에는 2년 연속 3할 타율과 30홈런 이상을 기록, 특히 1988년에는 도쿄 돔에서 팀 홈런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홈런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1989년에는 좌익수로 수비 위치를 변경, 9년 연속 20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긴테쓰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18타석 연속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5차전에서 워렌 크로마티를 고의사구로 거르고 자신과 승부하는 만루 작전에서 첫 안타인 만루 홈런을 쳐냈다. 이 시리즈에서 2안타에 그쳤지만, 5차전 만루 홈런, 7차전 2점 홈런 등 모두 홈런으로 연결하며 고마다 노리히로를 능가하는 6타점을 기록했다.

2. 2. 2. 1990년대

1990년, 하라 다쓰노리는 옆구리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시즌 타율 3할을 기록했다. 1991년에는 11년 연속 20홈런이라는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을 달성했고, 연간 희생 플라이 리그 신기록(12개)을 세우며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1992년, 하라는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12년 연속 20홈런의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을 이어갔다. 1993년에는 다시 3루수로 복귀했지만,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으며 98경기 출장에 그쳤고, 11홈런, 44타점을 기록했다.

1994년, 하라는 왼쪽 다리 아킬레스건 부분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했지만, 14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같은 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하라는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1995년, 하라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에서 그는 통산 382호 홈런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3. 지도자 경력

하라 다쓰노리는 1999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아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야수 종합 코치로 부임하며 야구계에 복귀했고, 2000년에는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220] 2001년 시즌 종료 후 나가시마 감독의 뒤를 이어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하였다.[2]

2002년에는 팀 슬로건 '자이언츠 사랑'을 발표하고 과감한 선수 기용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여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수상하였다.[2] 그러나 2003년에는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팀은 3위에 그쳐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2]

2004년부터 2년 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특별 고문을 역임했고, 닛폰 TV 해설자와 스포츠 호치 객원 평론가를 겸임했다.

2005년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 재부임하여,[2]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우승으로 이끌었다.[3]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서는 2012년 "교류전, 페넌트 레이스, CS, 일본 시리즈, 아시아 시리즈" 5관왕을 달성하였고,[93] 3번째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수상했다.[94]

2018년 10월 23일,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후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에 세 번째로 부임했다.[145] 2019년 7월 30일,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13번째로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147][148]

2023년 10월 4일,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을 발표하고, 후임으로 아베 신노스케를 지명했다.[5] 총 재임 기간 동안 1,220승 355패 89무를 기록했으며, 2002년부터 2년, 2006년부터 10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총 3번, 17년 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을 맡았다.[7]

하라 다쓰노리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및 코칭 스태프가 2009년 일본 시리즈 우승 기념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3. 1. 코치 시절

1999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하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군 야수 종합 코치로 부임하며 야구계에 복귀했다. 첫 스프링 캠프에서는 외야 노크 때 홈런을 연발하는 진기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본인은 “방망이로 쳐서 스탠드를 향해 들어가는 것이 내 직업이었던 탓에 그만 이래 버렸다”라고 말했다. 2000년에는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220]

3. 2. 제1차 감독 시절 (2002~2003)

2001년 시즌 종료 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뒤를 이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차기 감독으로 부임하였다.[2] 2002년, 팀 슬로건으로 '자이언츠 사랑'을 발표하였다.

도카이 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1순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1995년에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 요미우리를 대표하는 중심 타자로서 활약했다. 은퇴 후에는 NHK 야구 해설자를 거쳐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요미우리 야수 종합 코치를 역임했다.

감독 부임 첫 해인 2002년에는 과감한 선수 기용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수상하였다.[2]

그러나 2003년에는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팀은 3위에 그쳤고, 하라는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2]

3. 3. 요미우리 특별 고문 시절 (2004~2005)

2004년부터 2년 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특별 고문을 역임했고, 닛폰 TV 해설자와 스포츠 호치 객원 평론가를 겸임했다. 또한 탤런트로서 TBS 라디오의 프로그램 '하라 다쓰노리의 생생 토크'(판켈 하라 다쓰노리의 생생 토크[48], 2004년 4월~9월: 일요일 9시 55분~10시, 2004년 10월~2005년 12월: 토요일 17시~17시 15분, 도쿄 지역만 방송)에서 진행자를 담당했다.

3. 4. 제2차 감독 시절 (2006~2015)

2005년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 재부임했다.[2] 2006년에는 고쿠보 히로키, 다카하시 요시노부 등 주력 선수들의 성적 부진과 부상으로 악재가 겹치며 6월과 7월에는 8연패, 10연패, 9연패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최종 성적은 65승 2무 79패로 4위에 그치며 2년 연속 B클래스(4~6위)에 머물렀다.

2007년에는 파격적인 선수 기용을 통해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2]

2008년에는 정규 시즌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지만, 일본 시리즈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다.[2]

2009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3]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서는 정규 시즌 리그 3연패,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쇼리키 마쓰타로상과 세계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11년에는 통일구 도입으로 팀 득점력이 저하되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패배했다.

2012년에는 무라타 슈이치, 스기우치 토시야, 데니스 홀튼 등을 영입하고, 노무라 가쓰야의 제자인 하시가미 히데키, 하타 신지를 코치로 초빙하는 등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단행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나가노 히사요시와 사카모토 하야토의 타순 변경, 이시이 요시토의 활약, 에드가 곤잘레스의 복귀 등으로 타선이 살아나며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89]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9월 21일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90] 미야구니 료스케, 다카기 쿄스케, 타하라 세이지, 고야마 유키 등 젊은 투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연패 뒤 3연승으로 일본 시리즈 진출권을 따냈고,[9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4승 2패로 꺾고 3년 만에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92]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며, 사상 처음으로 "교류전, 페넌트 레이스, CS, 일본 시리즈, 아시아 시리즈" 5관왕을 달성했다.[93]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3번째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수상했다.[94]

2013년에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시니어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며 대표팀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으로서는 개막 7연승을 기록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9월 22일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102]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3연승으로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지만,[103]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이끄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게 3승 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110][111]

2014년에는 6월 22일 교류전 우승을 차지했고,[115] 9월 26일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120]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한신 타이거스에게 4연패를 당하며 일본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122]

2015년에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며 V9 이후 2번째 리그 4연패 달성에 실패했다.[128] 4월에는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잠시 팀을 떠나기도 했다.[129]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한신을 꺾었지만, 야쿠르트에게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132] 10월 19일, 하라는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3년간 팀은 하락을 계속했습니다. 이쯤이 시기라고 생각했고, 새로운 리더에게 팀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며 퇴임을 공식 발표했다.[134][135]

3. 5. 제2차 감독 퇴임 후

2016년 1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 특별 고문에 취임했다.[137] 같은 해 1월 18일, 모교인 도카이 대학 쇼난 캠퍼스에서 열린 특별 공로상 수여식에 참석, 이노우에 야스오 유도 남자 일본 대표팀 감독과 대담을 가졌다.[138] 이 자리에서 하라는 "올해는 TV 해설은 일절 하지 않겠다. 다만, 개막전은 '게스트라면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139] 이후 3월 26일 야쿠르트와의 개막전에 니혼 TV 중계에서 마쓰이 히데키와 함께 게스트 해설을 맡았다.[140]

2016년 12월, 거인 OB회 간사로 취임했다.[141]

2017년부터 니혼 TV 해설자로 복귀했다.[142] TBS 제작 사무라이 재팬 중계에도 게스트 해설자로 출연했다.

2018년 1월 15일, 전문가 표창 부문에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43][144]

3. 6. 제3차 감독 시절 (2019~2023)

2018년 10월 23일, 다카하시 요시노부의 후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에 세 번째로 부임했다.[145] 2019년부터 3년 계약을 맺었으며, 등번호는 '''83'''번이다.[145] 요미우리에서 세 번이나 감독을 맡은 것은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146] 히로시마에서 FA를 선언한 마루 요시히로이와쿠마 히사시, 나카지마 히로유키를 영입했다.

2019년 7월 30일,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13번째로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147][148] 9월 21일에는 5년 만에 리그 우승(통산 8번째)을 확정지었다.[149] 그러나 일본 시리즈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4연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150] 오프 시즌에는 이시이 타쿠로를 야수 종합 코치로 초빙했다.[151]

2020년 6월 25일에는 제라스 위일러[152], 7월 14일에는 다카나시 유헤이[153]라쿠텐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9월 11일, 가와카미 데쓰하루 전 감독을 제치고 요미우리 감독 통산 최다승(1067승)을 달성했다.[154] 10월 30일, 2년 연속 리그 우승(통산 9번째)을 달성했으나,[155] 일본 시리즈에서 또다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4연패하며 준우승했다.[156] 이로써 2013년 일본 시리즈 7차전부터 일본 시리즈 9연패를 기록, 1959년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의 8연패를 넘어선 구단 최악의 기록을 세웠다.[157]

12월 14일, DeNA에서 FA를 선언한 이노 노부카즈와 가지타니 다카유키를 영입, 하라 감독 동석 하에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158]

2021년에는 3위를 기록했고, 시즌 후 3년 재계약을 맺었다.[159]

2022년에는 4위로 5년 만에 B클래스(4위 이하)로 마감, 하라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23년 9월 29일, 구단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4위에 그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 책임을 지고 3년 계약 마지막 해를 남겨두고 사임했다. 10월 4일 최종전을 끝으로 퇴임식을 가졌고, 아베 신노스케 헤드 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취임했다.[5]

4. 플레이 스타일

장타율이 높은 데 반해 삼진 개수가 적은 편(통산 894삼진)이다.[225] 우타자치고는 병살타(통산 122병살)와 희생 플라이(통산 70희생타)도 적은, 극단적인 ‘플라이볼 타자’였다.[225] 2018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삼진은 역대 57위, 병살타는 122위, 희생 플라이는 13위이다.[225]

5. 감독으로서의 평판

선수들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고 사로잡는 힘이 뛰어났다. 자기 희생과 승리 지상주의를 관철하여 필요하다면 주축 타자에게도 번트를 지시했다.[207] 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수들이 모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207] 요미우리 입단 당시 감독이었던 후지타 모토시와 조감독이었던 오 사다하루(훗날의 감독)와 감독으로서의 방식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후지타가 살아있을 때에는 감독직에 대해 수 차례 의견을 교환했고, 오 사다하루로부터 지도자로서의 조언을 받았던 적이 있다.

6. 에피소드


  • 시원스러운 인상이지만 강직한 면도 갖고 있다. 2003년에 기사누키 히로시가 볼넷으로 자멸했을 때 “죽으려면 앞으로 넘어져서 죽어라”라고 활기를 북돋아주었다.[240]
  • ON시대 이후 요미우리의 4번 타자를 맡아 전 세대의 위대한 4번 타자와 자주 비교되어 현역 시절보다 공격당하는 일이 많았다. 감독이 된 지금도 타블로이드지에서 매일 같이 만담의 일종과 같은 전개의 이야기가 게재되고 있다.[240]
  • 전화를 좋아하여 2005년 시즌 종료 후에는 입단 교섭 중인 선수에게 전화를 자주 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FA를 선언한 노구치 시게키에게는 ‘같은 목표를 향해 싸우자’라고 말했고, 도요다 기요시에게는 하루에 세 번 전화를 걸어 두 사람 모두 요미우리에 입단할 수 있었다. 드래프트 지명 선수였던 쓰지우치 다카노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자이언츠 사랑’과 연관시켜 ‘'''사랑의 텔레폰'''’이라고 불리고 있다. 2006년 시즌 종료 후에는 다카하시 히사노리에게 “너는 좌완 에이스이니까 내년부터 등번호는 21번이다”라고 말했다. 이듬해 2007년 시즌 종료 후, 당시 한신 감독이었던 오카다 아키노부가 ‘트라이아웃 선수는 영입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후 후지타 소이치가 평균 자책 10을 넘는 성적 부진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방출당했다. 후지타에게 방출 통보된 다음 날 후지타의 집에 하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후지타는 요미우리와 입단 계약을 맺었고, 오카다는 이 일에 대해서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 2009년 3월 7일에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도쿄 라운드(제1라운드) 일본 대 대한민국전 승리 감독 인터뷰 당시, 마이크 음성이 구장에 나오지 않는 사고가 발생하여 관중들이 ‘들리지 않는다’라는 등 불만을 제기했지만 인터뷰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인터뷰 도중 음성이 구장 전체에 흘러나오게 되었을 때 하라는 “첫 부분이 들리지 않았잖아요?”라고 말해 같은 인터뷰를 처음부터 다시 하면서 관객들의 불만을 한순간에 바꾸어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171]
  • 현재 도카이 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가 있는 사가미하라시에 본사를 둔 주택 판매업 ‘마루쇼 산업’의 이미지 캐릭터[241]를 해설자 시절부터 계속해오고 있지만, 그 회사 간판에는 요미우리와 매우 닮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등번호 ‘8’ 버전과 ‘88’의 버전이 있다).
  • 프로가 되지 못했으면 학교 선생님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 농담삼아 ‘야구보다 좋아한다’라고 공언할 정도의 골프광으로도 알려져 있다.
  • 프로레슬링도 니혼 TV에서 중계하고 있는 전일본 프로레슬링프로레슬링 노아 계열에 조예가 깊으며 게스트 해설자로 출연한 적이 있다.
  •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애견가로, 복서견을 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육하고 있다.
  • 이전에는 흡연자였지만 2003년 가을에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금연 트레이닝을 실시하여 같은 해 12월 31일부로 담배를 끊었다. 2004년 이후에는 비흡연자이며, 2005년 가을에 요미우리 감독으로 재부임한 이후에는 팀 내 선수, 코칭 스태프의 현역 흡연자 전원에게 금연을 지시했고 구단 사무소 내의 전면 금연을 철저히 했다.[243]
  • 좋아하는 차량은 렉서스 LS이다.
  • 멜론빵을 매우 좋아하며, 과자빵류에서는 멜론빵 외에는 과자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 어린 시절부터 나가시마 시게오의 열성팬이었으며, 나가시마 감독 아래에서 코치로 취임한 이후 나가시마의 ‘스윽 하고 휘둘러서 빵~하고 맞춰라’라는 의태어로 설명하거나 화려한 제스처를 섞는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 제스처 하나하나에 특징이 있다. 특히 같은 팀 선수가 홈런을 친 후 마중나갈 때에는 눈을 크게 뜨고 양쪽 주먹을 내밀어 선수와 맞추는 몸짓은 정해져 있는 스타일이 되었다.
  • 2012년 슈칸 분슌 6월 28일 자(21일 발매) 보도에 의하면, 하라가 현역 시절이던 1988년에 요미우리가 간사이 원정 때 묵었던 효고현 아시야시 내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8년 후 하라가 요미우리 감독으로 복귀한 2006년 8월에 그 여성의 일기를 갖고 있다는 ‘자칭 야구계 관계자’ 남성 두 명이 하라에게 연락해서 1억 엔을 요구했다. 그러나 2009년에도 이전의 남성 두 명과는 또 다른 남성이 당시 여성 문제에 대한 일기와 관련해 구단 측에 연락을 해왔다. 아무것도 몰랐던 구단 측이 하라에게 따지자 하라는 불륜 사실과 1억 엔을 건넸다는 사실을 구단에 털어놓았고, 그 때 부인에게도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고백했다고 한다.
  • 슈칸 분슌의 기사에 의하면 ‘자칭 야구계 관계자’라던 두 사람은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그 중 한 명은 이후에 사고로 죽었다. 또 한 사람인 주범격은 본인 또는 연고자가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며 노무라 가쓰야 부부[244]나카하타 기요시[245] 등과 친분 있는 사이였다고 했는데, 이 두 사람을 중개했던 것도 나카하타라고 밝혔다.[246]
  • 슈칸 분슌 6월 28일 자에 이 문제가 보도되자 하라는 당시 상황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고, 1988년에 불거졌던 여성 문제와 2006년의 금전 문제 등 슈칸 분슌의 기사 내용들을 모두 인정해 팬들에게 사과했다. 동시에 발표한 문서에서 요미우리 구단 대표직에서 해임된 기요타케 히데토시를 슈칸 분슌 폭로 기사의 배후로 단정했으나, 그 직후 기요타케 측에서는 이를 부인했고 “매우 유감이다. 자신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라는 해명이 나왔다.[247]

7. 수상 및 타이틀 경력

하라 다쓰노리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출신으로,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1] 1981년 센트럴 리그 신인왕, 1983년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7. 1. 타이틀


하라 다쓰노리는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1981년에는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1983년에는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7. 2. 수상

연도내용
1981년신인왕
1983년MVP (1회)
1983년, 1987년, 1988년, 1990년, 1991년베스트 나인 (5회)
1987년, 1988년골든 글러브상 (2회, 3루수 부문)
1983년 5월, 1985년 7월, 1989년 4월월간 MVP (3회, 야수 부문)
2002년, 2009년, 2012년쇼리키 마쓰타로상 (3회, 감독으로서 수상)
2015년커미셔너 특별 수상 (공로상)
2002년, 2007년 ~ 2009년, 2012년 ~ 2014년, 2019년, 2020년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수상 (최우수 감독상, 9회)
1992년 8월JA 전농 Go·Go상 (최다 2·3루타상)
1983년, 1987년고라쿠엔 MVP상 (2회)
1995년, 2014년도쿄 돔 MVP 특별상 (2회)
1988년야나세 자이언츠 MVP상 (1회)
1983년, 2009년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 (2회, 센트럴 리그 부문, 특별상)
2009년넘버 MVP상 (1회)
2009년일본 프로 스포츠 대상 수훈상[249]
2018년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전문가 부문)
2009년세계 최우수 감독상 (국제 야구 연맹 선정)
2021년감수포장[250]
2016년도카이 대학 특별 공로상
1995년유머 대상


8. 개인 기록

하라 다쓰노리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출신으로,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1981년에는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1983년에는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자이언츠의 매우 인기 있는 선수였으며, 선수 시절 동안 신문, 잡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루어졌다.[1]

ON 시대 이후 요미우리의 4번 타자를 맡았기 때문에 전 세대의 위대한 4번 타자와 빈번하게 비교되어 현역 시절 비판을 많이 받았다. 특히 "승부 근성이 약한 4번 타자"라는 비판이 두드러졌다.[161]

1988년 9월 4일 도쿄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주루 방해로 아웃된 적이 있다. 하라는 좌중간으로 큰 타구를 날렸고, 주니치 좌익수가 공을 잡은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펜스에 맞고 튀어 오른 공을 잡은 것이었다. 하라는 아웃되었다고 생각하고 1루 베이스에서 떨어져 벤치로 돌아갔고, 심판진은 하라를 주루 방해로 아웃 처리했다. 이 사건은 하라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 심판까지 착각하여 일어난 진기한 사건이었다.[162]

다음은 하라 다쓰노리의 선수 시절 기록이다.

기록 종류내용
1이닝 2홈런1985년 5월 12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초 선두에서 가도타 후미아키로부터 좌월 솔로, 2사 2루 상황에서 구보 후미오로부터 좌월 2점 홈런 ※역대 10번째(12번째)[251]
헤이세이 제1호 홈런1989년 4월 8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도쿄 돔), 1회말에 오바나 다카오로부터 좌월 2점 홈런 ※통산 250홈런 동시에 달성
시즌 12 희생플라이1991년 ※역대 공동 3위,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
올스타전 출장11회(1981년 ~ 1988년, 1990년 ~ 1992년)



선수 시절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선수 시대별 성적
리그
구단연도GBBBNRUNHit2BH3BHHRTBRBISBSBHSbpSFWALIBBDBSODPBAOBPSLGOPS
도쿄 자이언츠198112550747064126236222276766072703789.268.308.483.791
1982130542494811361913325692116044242826.275.332.518.850
19831305715009415132432287103940860135611.302.375.574.949
198413054346872130191272328173146733588.278.369.496.865
1985124521441791252323425494732860210426.283.376.576.952
198611346740670115213362508072165242578.283.363.616.978
1987123489433801331733425895720744656111.307.372.596.968
1988126529467791402413125981560061616314.300.382.555.936
198911445939560103220252007433026042686.261.359.506.866
199010342536658111171201906864045233644.303.391.519.910
19911275244556612213129224865301255128271.268.342.492.834
1992117493437611191712822277430346177113.272.349.508.857
1993983873362877140111244432034414629.229.323.369.692
199467227200265841141063602212212215.290.364.530.894
1995701601441329806551521111311295.201.270.382.652
통산1697684460129311675273253823144109382507707053850894122.279.355.523.878



출처: 일본 프로 야구

8. 1. 첫 기록

기록명내용
첫 출장·첫 선발 출장4월 4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차전(고라쿠엔 구장), 6번·2루수로서 선발 출장
첫 안타상동, 6회말에 우시지마 가즈히코로부터 좌전 안타
첫 홈런·첫 타점4월 5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차전(고라쿠엔 구장), 8회말에 고마쓰 다쓰오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
첫 4번6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0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8. 2. 기록 달성 경력

연도내용
1984년통산 100홈런: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4회 초 나카모토 시게키에게서 좌중간 솔로 홈런 (역대 131번째)
1986년통산 150홈런: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2회 초 리처드 게일에게서 좌월 3점 홈런 (역대 79번째)
1987년통산 200홈런: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9회 말 나카니시 기요오키에게서 좌월 2점 홈런 (역대 53번째)
1988년통산 1000안타: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9회 초 오바나 다카오에게서 좌전 안타 (역대 153번째)
1988년통산 1000경기 출장: 도쿄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4번·3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280번째)
1989년통산 250홈런: 도쿄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1회 말 오바나 다카오에게서 좌월 2점 홈런 (역대 28번째)
1991년통산 300홈런: 도쿄 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5회 말 다카무라 요스케에게서 좌월 3점 홈런 (역대 20번째)
1992년통산 1500안타: 도쿄 돔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 7회 말 모치즈키 하지메에게서 중전 안타 (역대 66번째)
1992년통산 350홈런: 도쿄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 6회 말 이마나카 신지에게서 좌월 2점 홈런 (역대 15번째)
1993년통산 1000타점: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 4회 초 사이토 다카시에게서 중전 적시타 (역대 22번째)
1993년통산 1500경기 출장: 도쿄 돔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 4번·3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106번째)
1994년통산 3000루타: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 1회 초 가토 마사토에게서 중전 2점 적시 2루타 (역대 32번째)


8. 3. 기타

하라 다쓰노리는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출신으로,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선수 시절 신문, 잡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자이언츠의 인기 선수였다.[1]

ON 시대 이후 요미우리의 4번 타자를 맡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위대한 4번 타자와 자주 비교되며 현역 시절 비판을 받기도 했다.[161] 특히 "승부 근성이 약한 4번 타자"라는 비판이 많았다.[160]

1988년 9월 4일 도쿄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주루 방해로 아웃된 적이 있다. 하라는 좌중간으로 큰 타구를 날렸고, 주니치 좌익수가 공을 잡은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펜스에 맞고 튀어 오른 공을 잡은 것이었다. 하라는 아웃되었다고 생각하고 1루 베이스에서 떨어져 벤치로 돌아갔고, 심판진은 하라를 주루 방해로 아웃 처리했다. 이 사건은 하라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과 심판까지 착각하여 일어난 진기한 사건이었다.[162]

2012년 6월, 주간문춘은 1988년 당시 여성 문제와 관련된 2006년 당시의 1억 엔 금전 지불 경위에 대해 보도했다.[180][181][182] 하라는 기사 내용을 대체로 인정하고 팬들에게 사죄했으며, 지불 상대에 대해서는 "프로 야구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말했다.[186]

다음은 하라 다쓰노리의 선수 시절 기록이다.

기록 종류내용
1이닝 2홈런1985년 5월 12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초 선두에서 가도타 후미아키로부터 좌월 솔로, 2사 2루 상황에서 구보 후미오로부터 좌월 2점 홈런 ※역대 10번째(12번째)[251]
헤이세이 제1호 홈런1989년 4월 8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도쿄 돔), 1회말에 오바나 다카오로부터 좌월 2점 홈런 ※통산 250홈런 동시에 달성
시즌 12 희생플라이1991년 ※역대 공동 3위,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
올스타전 출장11회(1981년 ~ 1988년, 1990년 ~ 1992년)


8. 4. 감독으로서의 달성 경력

통산 500승은 2010년 5월 13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달성했으며, 이는 역대 26번째이자 구단 역사상 5번째 기록이다.[239] 2012년 9월 1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도쿄 돔)에서는 통산 700승을 달성하여 역대 18번째, 구단 역사상 4번째 기록을 세웠다.[239] 2019년 7월 3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승리하며 통산 1000승을 달성, 역대 13번째이자 구단 역사상 3번째 기록을 달성했다.[239] 2022년 8월 6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통산 1200승을 달성하며 역대 10번째이자 구단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252] 한편, 2023년 8월 1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도쿄 돔)에서는 통산 1000패를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11번째 기록이다.

감독으로서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승 2회(2012년, 2014년), 센트럴 리그 우승 7회(2002년, 2007년 ~ 2009년, 2012년 ~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4회(2008년, 2009년, 2012년, 2013년), 일본 시리즈 우승 3회(2002년, 2009년, 2012년), 한일 클럽 챔피언십 우승(2009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2012년)을 달성했다.[239] 또한,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239]

감독으로서의 연도별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소속순위경기승리패전무승부승률승차팀 홈런팀 타율팀 평균자책점득점실점연령
2002년요미우리1위14086522.623(11.0)186.2723.0469148544세
2003년3위14071663.51815.5205.2624.4365468145세
2006년4위14665792.45123.5134.2513.6555259248세
2007년1위14480631.559(1.5)191.2763.5869255649세
2008년1위14484573.596(2.0)177.2663.3763153250세
2009년1위14489469.659(12.0)182.2752.9465049351세
2010년3위14479641.5521.0226.2663.8971164052세
2011년3위144716211.5343.5108.2432.6147141753세
2012년1위144864315.667(10.5)94.2562.1653435454세
2013년1위14484537.613(12.5)145.2623.2159750855세
2014년1위14482611.573(7.0)144.2573.5859655256세
2015년2위14375671.5281.598.2432.7848944357세
2019년1위14377642.546(5.5)183.2573.7766357361세
2020년1위12067458.598(7.5)135.2553.3453242162세
2021년3위143616220.49611.0169.2423.6355254163세
2022년4위14368723.48612.5163.2423.6954858964세
2023년4위14371702.50415.5164.2523.3952350765세
통산: 17년2407129195589.560A클래스: 14회, B클래스: 3회


  • 순위에서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
  • 우승한 연도의 승차는 2위와의 승차.
  • 팀 성적에서 '''굵은 글씨'''는 리그 1위, 밑줄은 리그 최하위


하라 다쓰노리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연도소속경기명상대팀성적
2002년요미우리일본 시리즈세이부(퍼시픽 리그 1위)4승 0패 = 일본 시리즈 우승
2007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5)
주니치 드래건스(센트럴 리그 2위)0승 3패 = 탈락
2008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6)
주니치 드래건스(센트럴 리그 3위)3승 1무 1패 = 일본 시리즈 진출(※7)
일본 시리즈세이부(퍼시픽 리그 1위)3승 4패 = 탈락
2009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6)
주니치 드래건스(센트럴 리그 2위)4승 1패 = 일본 시리즈 진출(※8)
일본 시리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퍼시픽 리그 1위)4승 2패 = 일본 시리즈 우승
2010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한신 타이거스(센트럴 리그 2위)2승 0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주니치 드래건스(센트럴 리그 1위)1승 4패 = 탈락(※9)
2011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센트럴 리그 2위)1승 2패 = 탈락
2012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주니치 드래건스(센트럴 리그 2위)4승 3패 = 일본 시리즈 진출(※8)
일본 시리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퍼시픽 리그 1위)4승 2패 = 일본 시리즈 우승
2013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센트럴 리그 3위)4승 0패 = 일본 시리즈 진출(※8)
일본 시리즈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퍼시픽 리그 1위)3승 4패 = 탈락
2014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한신 타이거스(센트럴 리그 2위)1승 4패 = 탈락(※8)
2015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한신 타이거스(센트럴 리그 3위)2승 1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센트럴 리그 1위)1승 4패 = 탈락(※9)
2019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한신 타이거스(센트럴 리그 3위)4승 1패 = 일본 시리즈 진출(※8)
일본 시리즈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퍼시픽 리그 2위)0승 4패 = 탈락
2020년일본 시리즈(※10)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퍼시픽 리그 1위)0승 4패 = 탈락
2021년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한신 타이거스(센트럴 리그 2위)2승 0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센트럴 리그 1위)0승 1무 3패 = 탈락(※11)


  • 성적에서의 '''굵은 글씨'''는 승리
  • 비고

::※5 : 2007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는 '''5경기제'''이며 먼저 3승을 한 팀은 일본 시리즈 진출, 리그 우승 팀에게는 어드밴티지가 없음

::※6 : 2008년 이후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2스테이지는(2010년 이후에는 파이널 스테이지) '''6경기제'''이며 먼저 4승을 한 팀은 일본 시리즈에 진출, '''리그 우승 팀에게는 1승의 어드밴티지가 주어짐'''

::※7 : 어드밴티지 1승을 포함, 3승을 기록하여 승리한 것은 무승부로 끝난 경기에서 승패가 동률인 경우 상위 팀의 우승이 되는 규정에 의함

::※8 : 어드밴티지 1승을 포함

::※9 : 4패 중에 상대 팀의 어드밴티지 1승을 포함

::※10 : 2020년은 특례에 의해 센트럴 리그는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없고 정규 시즌 우승 팀이 그대로 일본 시리즈 출전권을 얻었음

::※11 : 3패 중 상대팀 어드밴티지의 1승을 포함. 3패로 탈락한 것은 무승부 경기에서 승수가 동률이 될 경우 상위 팀의 우승이 되는 규정에 의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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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웹사이트 Tatsunori Hara expected to manage Japan at World Baseball Classic http://canadianpress[...] 2008-10-28
[4] 웹사이트 Tatsunori Hara has shot at top 10 for most wins by a manager https://www.japantim[...] 2019-08-02
[5] 웹사이트 Giants prepare to start new era as manager Tatsunori Hara walks away https://www.japantim[...]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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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原辰徳氏・客員教授に https://www.tokainew[...] 学校法人東海大学新聞編集委員会 2016-12-03
[10] 웹사이트 『原辰徳のいきいきトーク』番組公式サイト(インターネットアーカイブ保存キャッシュ) https://web.archive.[...] 20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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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뉴스 「ドラフト外」に策謀のにおい…指名回避の手段に 虎番疾風録其の四(143) https://www.sankei.c[...] IZA! 2023-01-16
[19] 뉴스 東海大が「完全」 原、ベスト10入れず 読売新聞 1977-10-25
[20] 뉴스 元巨人捕手で元スカウトの加藤克巳さん死去、86歳 原辰徳ら発掘に尽力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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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웹사이트 巨人・原監督から清宮クンへ「マメのケアが大事」 有鉤骨骨折の先輩がアドバイス(2/2ページ) https://www.zakzak.c[...]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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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웹사이트 原氏と津田氏の勝負の絆は今でも生きている/コラム https://www.nikkansp[...] 2016-09-19
[29] 웹사이트 プロ野球選手の「異常に安かった」バブル期の年俸 沢村賞投手に提示された“衝撃の額” https://dot.asahi.co[...] 朝日新聞出版 20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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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신문 原満塁弾 19打席目 待ちわびた初安打 切り札・吉井撃沈 読売新聞 1989-10-27
[34] 신문 原、登録を抹消 きょう精密検査 読売新聞 1990-04-09
[35] 신문 原復帰、大森二軍 読売新聞 1990-05-07
[36] ニュース 原10年連続20号 読売新聞 1990-09-30
[37] ニュース 原がセ年間最多の12犠飛 読売新聞 1991-10-06
[38] ニュース 原9900万、球団トップ守る 読売新聞 199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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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웹사이트 原巨人独走V ファンへささぐ「優勝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新聞社 201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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